그림일기1.
45x45cm,캔버스에 아크릴,2023
거칠게 함부로 해치우고 싶었다
좀 덜 먹으면 어떻고 좀 더 먹으면 뭐 어때서, 졸리면 자면 되고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고, 목표 따위 정해놓지 말고 빈둥거리며 사는 것도 사는 거라는 식의 말은 아무나 하면 안 된다. 참을 수 없이 계속 먹고 싶을 때 이를 악다물고 참아본 사람, 삶의 의욕을 모두 잃어 도저히 입에 뭘 넣고 싶지 않은데도 누군가에 대한 책임감으로 억지로 밥을 먹어본 사람, 자칫 졸았다가는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질 수도 있기에 몰려오는 잠을 초인적인 의지로 물리쳐본 사람, 어쩔 수 없는 가난이 아니라 흔쾌히 선택한 가난에 걸맞게 빈둥거리는 삶을 오롯이 즐길 줄 아는 사람만이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. 그러나 현실에서는,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.
내 삶의 중요한 환경임에 분명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해답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는 나 역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경우가 자주 생긴다. 그럴 때 이런 그림을 그리고 나면,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미지의 어떤 곳으로 떠나지 않고 이곳에서도 견딜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.
튜브 타입의 보라색 아크릴 물감 통을 거꾸로 들고 캔버스 위에 흩뿌리듯 짜내면서 그린 그림인데, 꽉 막혀 있던 마음이 이 그림을 그리고 나서 해소되었다. 어떤 마음으로 무엇을 그리고 싶었는지 모르겠다. 그냥, 잔뜩 응어리져 있던 어떤 감정을 캔버스 위에 마구 쏟아버리듯 그림을 그렸다.
거칠게, 함부로 해치우고 싶었다. 고작 하얀색 도화지 위에서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