자화상
이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은 턱 밑에 난 뾰루지 때문이었다. 세수할 때마다 손끝에 닿는 뾰루지가 신경 쓰여 아예 짜버릴 요량으로 거울 앞에 섰다. 거울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그날따라 거울 속 내 얼굴이 처음 보는 것처럼 낯설게 마음을 건드렸다. 내가 이렇게 생겼구나, 하는 심정으로 거울 속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다가 도무지 나 같지 않은 내 얼굴을 한번 그려볼까,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. 그림을 그리기 위해 찬찬히 살펴본 내 얼굴은 한마디로 실망스러웠다. 얼굴선은 울퉁불퉁했고 반쯤 쌍꺼풀진 양쪽 눈은 이상하게 짝짝이로 찌그러져 있었다. 낮고 펑퍼짐한 코에는 언제 그랬는지 기억나지 않는 상처의 잔해들이 군데군데 있었다. 특히 입은 아무리 보아도 내 것 같지 않았다. 웃거나 입을 앙다물 때만 정체를 드러낸다, 생각했던 보조개가 아예 주름이 되어 흔적을 남기고 있는 것도 처음 발견한 모습이었다. 언제부터 그 자리에 있었는지 알 수 없는 크고 작은 점들도 낯설긴 매한가지였다. 유일하게 낯익은 것은 머리카락, 아니 헤어스타일이었다. 그러고 보니, 얼굴형과 눈 코 입은 내 의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지만 헤어스타일은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내가 디자인한 거였다.
내 얼굴에 대한 적나라한 해부는 약간 낯선 경험이긴 했지만 그것에 대해 특별히 어떤 감정이 생기거나 하지는 않았다. 그냥 무덤덤하게 받아들여졌다.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떤가, 싶었다. 소위 자화상이라 이름 붙인 이 그림은 그런 마음으로 그렸다. 개성이나 정체성 같은 것이 전혀 엿보이지 않는 이 자화상은 그러므로 나라고 해도 상관없고 내가 아니라고 해도 상관없다. 단지 나는 이 그림을 그리면서 나를 처음 보았다.